나무에 새겨진 무의식의 세계

 

작가는 몇 년간 링크와 네트워크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작업을 하면서 해마다 각기 다른 재료와 형태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작업의 주제는 링크였다. 개인적으로 물성을 이용한 작업을 지극히 경계해 온 그가 어쩌면 조형에서 가장 물성에 의지해야 할 나무라는 소재를 이번 작업에 이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폐교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곧 용도가 변경되어 작업장 문을 닫아야할 그곳에는 작가와 함께 해 온 커다란 나무가 있다. 그 나무마저도 폐교의 용도변경에 희생되어 잘라져 버렸나보다. ‘개잎갈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나무는 사철 내내 보여주는 푸름 때문에 조경수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뿌리가 약한 이유로 태풍 등에는 쉽게 뽑히기도 하나보다.

삶에서 힘든 시기의 5, 6년을 폐교에서 작업을 하면서 보냈던 작가에게 잘라져버린 나무라는 대상은 그에게 하나의 링크가 되고 만다. 아니, 그가 작업해온 링크라는 개념적 의미를 넘어서서 단순한 관계 맺음에 들어간 것이다. 그 누구도 일상에서 개념적인 의식을 하면서 사람이나 어떤 대상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와의 관계 맺음은 그의 작업에 또 다른 계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바라본 나무가 아니라 나무가 바라본 나의 모습을 인식하기 시작한 작가는 소통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관계가 아닐까 한다.

 

개잎갈나무를 이용한 몇 개의 나무 판재를 겹쳐서 하나의 조형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그의 작업은 중성적 이미지를 가진 인체가 서로 겹쳐져 있다. 인체를 드로잉하고 조합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그는 링크라는 개념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작업을 개념화 하는 일은 작업 이상으로 중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개념을 너무 의식하다 보면 자유로운 작가적 기질이 억제되는 경우도 있다. 신강호는 이성적으로 재료에 대한 확신과 작업개념을 만들어 온 작가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그가 만들어낸 개념이 작업을 박제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업의 진정성이라는 의미를 살펴보자면 그는 링크라는 개념을 만들었지만 그 자신이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는 서툴고 어린 사람이다. 어쩌면 그 서투름이 작업을 만들어 내고 집중하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프레임이 세상이 되듯이 겹쳐진 중성적 이미지의 인체들은 작가의 자아가 추구하고 갈망하는 무의식의 세계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인체들의 조합이 가지는 심리적인 기류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강호는 인체의 역동적이고 극적인 표현을 통하여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 표현들에는 각각의 스토리가 있다. 이전에도 조금은 이성적인 작업을 하였던 작가다. 그런 그가 무의식적인 감각에 맡겨진 작업을 하였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의 작업에서 링크라는 개념이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면 관계는 나 아닌 타인이 공존하는 현실적인 세계이다. 나무를 단순히 소재를 넘어서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동등한 주체로 인식하였다는 것은 그가 관계 맺고 소통하는 링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의 의식이 물성과 개념을 의식하지 않고 무의식적인 창작행위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의식이 작가를 성장시킨다. 그것이 치유를 통한 성장이라면 배가 될 것이다.

신강호가 관계 맺기 시작한 개잎갈나무가 뿌리 약한 나무이고 이름이 멋쩍다고 재미있어하는 작가의 표정에서 많은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듯이, 이제야 자신을 드러내고 나무라는 대상을 통하여 자아와 소통하기 시작한 작가에게 격려의 인사를 보낸다.

 

 

김향금(대구미술비평연구회,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장)

  

 



<작업노트>


 나의 작업실은 오래전에 폐교가 된 옛 초등학교이다. 

그 곳에는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아주 큰 개잎갈나무가 있었다. 스스로 가장 힘든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5~6년을 함께했다. 내가 이곳을 떠나야 할 때 나무도 함께 베어졌다.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이번 개인전의 작품 재료로 사용했다. 이 나무는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나무이다. 우두커니 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며 살았을 것이다. 

나무가 바라본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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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7. 12. 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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